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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알바생의 시선

알바일상_ <차량정산소에서의 16시간>

by 휴 우 2017. 9. 8.
너무 현실적이어서 여운이 진하게 아른거리는 악몽의 잔상을 베개 맡에 묻혀둔채 침대에 누운지 2시간만인 AM 3:30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향했다.

타르트 알바는 그만뒀지만 최근 입었던 화상에 아침부터 피 파티였다.

AM 5:30 집에서 출발해 정문 차량정산소에서 준비금을 챙겨들고 동문으로 향한다.

여름이 가긴 갔는지 몇 주 전, 이른 아침에도 하늘을 찢으며 한 줌씩 던져지던 햇살대신 안개같은 어둠만  미적거리고 있었다.

올해 들어 꽃과 나무들이 많아져 훨씬 예뻐진 교정.
마중하듯 활짝 핀 꽃들은 탁한 빛깔의 배경에도 여전히 싱그러웠다.

녹슬어서 풀고 여물 때 새침하기 짝이 없는 자물쇠를 겨우 따 바리게이트를 인도 쪽 구석에 밀어넣고 대문을 연다.
정산소 입출차 개폐기를 내리고 프로그램을 켜 AM 6 전까지 차량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다.

오늘은 9월 8일 금요일.
알바가 없는 날이지만 며칠 전의 본부 선생님 전화를 받고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정산소 알바를 하기로 했다.

AM 8 까지만 동문 근무, 이후 신정문까지 열심히 걸어 약속된  15시까지 시간들을 채워나간다.

어떤 알바든 생각보다 다양한 상황에 마주한다. 여기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 프로그램,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 기계, 행사, 날씨 듯 변수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4차선이고 통제할 차량이 다른 문에 비해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는 신정문에서  6시간 일한다니 실수하지않을까 심장이 콩닥콩닥 저릿하다.

준비금의 잔돈을 적절하게 바꿔주시고 바쁜시간 때에 차량들을 통제하며,
개폐기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때 고쳐주시는 선생님이 계신다.
몰랐는데 나는 '아저씨'로 부르고 있었다..왜지??
어찌보면 예의에 어긋난 언행인데 그냥  넘겨주셨었네. 히히

암튼 아저씨와 대화를 하다 완주에 있는 나의 본가와 같은 동네에 살고 계시고 내가 사는 아파트 가스점검 일도 하셨단다.
차량 알바생들 중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는 편이었는데 다 인연이어서 그랬던가보다며 넉살 좋게 화두를 끌어가신다 .

아드님만 있으셔서 이쁜 딸 삼으신다  농하시는 선생님ㅋㅋ

퇴근길엔 커피도 챙겨주셨다.

다시! 정문에서 혼자 일하는데~ 차량요금을 낼 고객이 방금 쪄 온거라며 건내주신 햇밤 한 봉지.

초면에 이 귀한 양식을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꾸벅)
기분이가 좋아집니다.

주차요금을 건네주며
'오늘 근무자는 왜이리 예쁘냐'고 소담을 건네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기존 근무지인 박물관쪽으로 종종 출차하시는 분이 날 알아보시고
'사실은 예쁜 학생 보려고 오늘은 여기로 나온거야' 장난을 치시니
또 기분이가 좋아집니다.ㅋㅋㅋㅋ
 
예쁘단 말만 들으면 급! 기쁨지수가 하늘을 찌르는 걸 보면
하여간 나란 여자, 참 단순한 여자...

우리학교는 입차시와 같은 문으로 15분 안에 출차할 경우 무료이고,
문이 다르다면 통과만 해도 30분 이내 출차시 1000원이 부과된다.

주차시간이 몇 분 되지않은 아저씨가 반말, 삿대질 콤보를 날리며 돈 왜 내야하냐!!!고 이딴 경우가 다있냐!!!이거 인터넷에 올릴거다!!! 라고 소리치신다.
원칙상 어쩔 수 없다 설명하고 죄송하다 연발하며 천원을 겨우 받아냈다.
 
카메라가 차량 번호를 인식 못한건데 정기차량이라고 소리치고 짜증내고..열어주면 욕하면서 나가거나,
정기차량 전용차로라 써있는데 굳이 차 밀리는 시간에 그 쪽으로 가서 출차 두 차선 동시에 밀리게 하는 민폐 일반차량..등등등등등

다 좋은데 욕하고 삿대질이나 좀 안했으면 좋겠다.

한두번 겪는 일도 아닌데 매번 이런 사람들이 스쳐갈 때마다 불쾌한 기분이 한동안 맴도는 건 나아지질 않는다.

익숙해진 그 감정들은 가슴 아래 켜켜이 담겨진다. 하루종일 잘 절여지면 맥주 한두 잔의 맛을 극대화 시키는 안주로 이만한 게 없다.

이만한 알바도 없지.
점심시간 한 시간 밥 교대까지 해주신다.
11시반부터 12시 반이란 시간은...
계속 밀리는 차량으로 정산이 늦어지면서 10분 가량 줄어든다.
낮이 되자 뙤양볕을 내리꽂는 태양 아래 무거운 가방을 메고 걷는다. 신호등이 차례가 오는데 참 오래걸린다. 
마트에서 잠시 고민하다 참치통조림을 집어 집까지 도착하니 20분 남았다.
밥먹으면 양치도 해야하고 가방 정리 할거니까..
 밥은 걍 포기하고 양치, 가방정리하고 다시 .. 알바하러갔는데 ..흠 ..정말 돈만 못벌 뿐 의미없는 시간?!
담엔 가방은 근무지에 두고 바로 카페에서 커피나 테이크아웃 해오는게  좋겠어.

다시 정산소.
이제 정문도 익숙해졌다.
차량도 덜 밀린다.
어쩌다 정문 1시간 추가되어서 4시까지 일하고,
2시간 쉬고,
박물관 PM6-AM12 마감까지 해야만하는 처지이 되었다.
돈이고 나발이고 놀고싶은데...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몸이 가라앉는다.

친구 군대휴가로 다같이 저녁에 모이기로 했고,
친한 사회대 학생회장오빠에게 학생회 개강모임에 놀러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12시 마감 후에 다시 연락주기로 한다.
오늘은 예대축제라 그런지 동네가 활기차다.

군대친구는 예정된 5시 보다 더 늦게 도착할 예정이 되어 만나지 못할 것 같다.
입대 후 처음 보는거였고 다같이 함께이고 싶었는데 아쉽다.

지금은 밤 11시를 지났다.
12시 퇴근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갇힌 느낌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나이기에 정신병자 마냥 뇌가 마비된 느낌이다.
팔 상태는 아침보다 훨씬 낫다.

요즘 꽂힌 gs25 라이스피넛만 점심 한 봉지~ 저녁 한 봉지, 편의점 커피 한잔마시고 딱히 뭘 먹진 않았다.


P.S 하루의 마무리.

사슬로 연결되어있는 요놈들은 바퀴 하나하나가 고정되어 풀고 옮기는데 내게 퍽 버겁다. 거의 다 옮긴 뒤였지만 지나가다 도와주신 두 남성분께 감사의 마음을..꾸벅

파리바게트에 들러 호두타르트를 집어들었다.
단골이라 친해진 매니저분들이라고 해야하나?! 사장님들이신가?!
암튼, 내가 너무 지쳐보인다며 맛보라고 신메뉴를 챙겨주셨다. 요놈은 디저트 확정!

집에 도착해 병나발로 맥주를 마시며  안주를 만든다.
순살로 매운 닭갈비를 만들고 갑자기 먹고싶어진 숙주를 마트에서 사와 추가한 뒤 슬라이스로 나온 고다치즈를 얹었다.

혼자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몇병의 맥주를 곁들여 다 먹고 기절.. 이러니 살이 찌지..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