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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자취생의 하루

자취 일상_<룸메이트, 기대와 현실.>

by 휴 우 2017. 8. 2.
시작은 꽤나 호기로웠다.
동거 하루 전 날,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규칙을 정하자며 회의 겸 이른 점심으로
전북대 구정문 만선횟집에서 참치회덮밥을 먹으며 시작한 우리.
먹는데 열중한 감이 있지만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역시 만선횟집의 참치회덮밥은 예술이야. 물론 오늘은 시키지 않았지만 알탕도.

1. 우리의 알바시간은 교차된다.
난 대학교 차량 정산소에서 오전부터 4시간 밤에 5시간일하고,
그녀는 빙수 집에서 오후 풀타임 알바를 한다.
얼굴 보기 힘듦.
잠시 풀이 죽다가 그녀가 내 퇴근시간까지 기다리겠다고 한다.
서로의 고충도 털고 가끔은 야식도 먹으면서 놀자고.
좋은 생각이야.

2. 7평 남짓의 좁은 방. 바닥에서 자고 싶었던 그녀지만 서로의 출근시간을 고려해 싱글 사이즈 보다 살짝 작은 느낌적인 느낌인 침대에서 같이 자기로 함.

3. 빨래는 세탁기에 넣어두고 돌리고 싶을 때 걍 막 돌림.

4. 청소는 차차 정하기.
 
5. 서로 공부...독려...하기...ㅋㅋㅋㅋ
 이는 엄청난 의지가 요구되는 것이다.
 마지막 날까지 둘다 기억하지 않았다.


어설픈 몇가지 조항들이지만,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는 때는
내가 차량정산소 마감 알바를 마치고 피곤에 쩔은 표정으로 돌아오는 밤 12시 반에서 1시 반 이후일 뿐이라 딱히 부딪힐 일이 없었다.

룸메이트들의 다툼을 자초하는 가장 큰 요인은
‘청소 & 수면시간대’ 가 아닐까 싶은데

두 여자의 급한 출근 준비는 집을 불과 몇 시간 만에 난장판으로 만들지만
내가 낮 2시 퇴근해서 청소할 시간은 있기 때문에,
야식을 먹어 생긴 전 날의 설거지와 방 청소는 걍 내가 했다.
사실 막 어질러진 곳을 청소할 때의  쾌감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2주밖에 머무르지 않으니 ‘손님’으로서 대접 해야한다는 마음이 컸다.

친구는 보통 빨래를 돌리고, 내가 오기 전 본인이 먹은 그릇 설거지를 착실히 해주었다.
SO, 내가 밤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집은 깨끗한 상태.

늦은 밤의 재회.
조신하게 그녀는 침대·나는 의자에 앉아 하루동안 모아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다가 슬슬 시동을 건다.

“편의점(또는 마트) 갈까?”
“그래! 곁들일 음료가 필요해!”
우리가 말하고도 웃기다.
그냥 함께있어서 그런가. 까르르까르르

룸메가 공수해 직접 썰기까지 한 생연어회로 시작해
내가 툭하면 볶아대는 돼지껍대기,
타코야끼, 불닭볶음면,
왕만두 with 비냉•물냉,
통집 비빔밥, 치즈라면 등등
매일 새로운 메뉴로 알차게 채운
우리의 뜨거운 밤!ㅋㅋㅋ흑ㅠ
근데...진짜 모두 예술적이었어.

한 명이 뭔가를 제안하면 다른 이는 한 술 더 뜸.
꽤나 많이 먹고서도
“아이스크림도 먹을까?”
“그래!” 하고 다시 마트나 편의점으로 쪼르르 내려간다.

서로에게 ‘룸메이트 = 야식 친구’가 되어갔고…….
우리가 먹는 거지만 참으로 대단한 양.

저녁보다 든든할 야식을 마치고 얼마되지 않아 그녀가 먼저 잠든다.
쉬이 잠들지 못하는 나의 심신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조명이 켜져있는 상태로 그녀는 잠을 자야했다.
사실 이 점이 가장 걱정이었는데
그녀가 개의치 않고 잘 자주어서 고마웠다.

우리는 매번 눈꺼풀에 무언가 얹어진 묵직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하며 후회했으나,
둘 다
저녁을 잘 못 먹고 일을 하는 편이어서인지
하루 종일 쌓인 스트레스가 터져서인지
야식을 거부하지 못하는..ㅎㅎ

자연스럽게 알바로 인한 푸념이나 당장의 고민들을 늘어놓고
서툴게나마 위로하고 조언하는 나날들이었다.

이따금씩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고등학교 선생님들과 이제는 이름도 헷갈리는 동창무리들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뒷덜미를 타고 흘렀던 아찔한 서늘함을 ...티 내지 않으려 애써보았지만 어찌 보였을지는 모르겠다.

노력 없는 일상과 건질 것 없는 성과물들. 이는 나를 주눅들게 한다.
불현듯 튀어나온 과거의 기억과 떳떳이 조우할 수 없는 나다.

무튼, 여러모로 그녀와의 2주간의 동거는 확실한 자극이 되었다.
8월이 되어 그녀는 장학숙으로 돌아갔다.
필리핀 갔을 때 사온 주전부리를 남겨주고 짐을 찾아갔다.

내가 일본여행을 간 탓에 집을 비운 것까지 따지면 얼굴 보고 잔 시간은 많지 않은데, 그녀가 돌아가고 하루만에 
서로의 빈자리가 허전하다며 연락을 한다.

룸메이트 체험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