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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자취생의 하루

힐링 찾아 발악_ <내 맘대로 레시피/도시락 싸기.>

by 휴 우 2017. 12. 8.
차량 알바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오전 0시 35분을 지나고 있었다.
하루 전에 롯데슈퍼에도 들러 욕심껏 장을 보고 왔는데도 재료가 부족한 것 같다.
집 아래 오전 1시 반까지 영업하는 마트에 내려가 좋아하는 야채들을 신중하게 고르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마트 사장님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계산을 한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떴다.
조금은 독특한 메뉴로 다채롭게 채워질 도시락을 떠올리니 콧노래부터 나온다.

특별한 날은 아니다,
단지 무엇에라도 열중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바로 눈에 보여야 했다.

만든다면 주고 싶은 사람이 몇몇 떠오른다.

푸짐한 6인분을 생각했는데 비루한 3인분이 나온 슬픈 사연.
지금 시작합니다.

맙소사.
집 도착하고 씻고 2시에 기절.
4시가 좀 안되어 눈이 떠졌다.
낮에 또 다른 약속이 있어서 안 자려고 했는데ㅜㅡ

메뉴는 사실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다.ㅋㅋ
의식의 흐름에 따라 만들다보면 만들어지겠지.

우선 찰 현미로 밥을 합니다.
집에 찰 현미 밖에 없거든요.
현미 사야는데...

요즘 고구마라떼 홀릭이다.
그래서 꿀 고구마를 인터넷으로 10키로 주문했는데 지금까지 먹어본 고구마 중 제일 달다. 훗.
고구마를 일단 찜기에 찌면서 고민을 시작하지.

잘 쪄진 고구마를 보니 으깨버리고 싶군.
맛탕 생각 자연스럽게 아웃.
따끈한 스프로 하고 싶었지만 식은 뒤 먹으면 맘 아프니까
본연의 맛을 그래도 잘 살릴 샐러드로 결정.
고구마가 퍽퍽하니까 찬물에 담가둔 양파와 사과를 잘게 썰어 쌍큼하게 넣어주고
머스터드와 마요네즈를 느낌대로 쭈욱.
소스를 짤 때 느낌은 늘 새로워. 짜릿해.

어제 오늘 사 온 야채를 탈타라탈탈.
사보이 양배추 잎을 여러 장 떼어 또 찌고

햄도 굽고~
이번엔 목우촌 햄 대신 더 건강한 햄 델리카트슨으로 했다. 이것도 짜지 않고 맛이 있더라구. 웅.

 
빨갛고 노란 파프리카도, 깻잎도, 사과도 썰고
토뫄톼를 씻어.

마늘이랑 고추로 기름내서 오리야채볶음 하고.

올리고당이랑 마요네즈로 참치 마요 만들고.

김밥 재료 묶음으로 산 우엉, 단무지, 당근, 오이 세트 뙇.
네모난 라이스페이퍼도 뙇. 두 번 구운 김밥 김도 뙇.

찌깐한 자취방에 하나 덜렁 놓여있는 인덕션으로 이만큼 준비하는 것도 꽤나 걸렸다.

근데.. 이제 뭘 하지.

얼마 전 함께 먹었던 월남 쌈이 생각나서
라이스페이퍼로 김밥을 싼다. 밥을 먹이고 싶거든. 웅.
하..근데... 저는 사실 그냥 월남쌈도 잘 못 싸먹는 X손이거든요..
실패작 엄청 나옴.
재료 반절 버린 듯.

갑자기 우울해지기 시작했다.ㅎ
그냥 김밥으로 선회할까하는데 그럼 뭔가 지는 느낌이야.
그건...너무 평범하잖아.ㅡㅡ

※오늘의 교훈: 오기부리지 말자.

오리로도 쌌다가 참치로도 쌌다가 햄으로도 쌌는데...ㅎ
엄청 많이 쌌는데
라이스페이퍼 버려, 양배추로도 쌌는데...
건진 게 몇 알 안 됨... 모양이 예쁘면 속재료가 오합지졸인 거 같고 막 그래ㅠ웅.

요즘 친해진 분에게 옮은 ‘웅’ 어미 말투.
눈치 채셨나요.

※오늘의 교훈: 목표는 구체적으로 정하고 하자.

도시락이고 깔쌈하게 만들고 싶다는 느낌만 정해서
하나하나 따로 생각하고 준비한 걸
합치니까
참 아쉬운 맛.

재료만 볼게 아니라 만들 음식을 제대로 생각해야합니다.
당장 오감으로 체감하니 잘 와 닿는
인생의 교훈이었습니다.

벌써 아침 10시가 되고 다른 친구와의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이성의 끈이 툭.
재료 마구 잘게 잘라서 다 섞어버리고 주먹밥 만듦.

속재료들 만들 때까지만 해도 기분 좋았는데...
그 비싼 것들로 만든 게 고작 저거라니...
이것이 바로 부르주아 놀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ᄒᆞᇂ하
찹쌀 현미인지라 주먹밥, 그마저도 저희끼리 붙으려고 한다.
밀가루에 굴려 튀겨주었는데...
부셔져서 건져내고 다시 뭉침.
바삭하고 촉촉함의 들쑥날쑥한 조화
증말.. 이런 전개 생각지도 못했어.

정신줄 내려놓고
얼마 전 코인 노래방에서 선물 받은 소리 나는 미니언즈 미러볼(?!)을 켜고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걍 외출준비하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 달간 혼자 유럽 자유여행을 갔다가 돌아온 친구를 만났어요.

원래 멋진 아이인데 더 멋져졌어요.
저도 여행을 갈거에오.
그녀와의 만남은 힐링에 있어 신의 한수였다.
내 친구라는 게 언제나 고마운 사람.

정신 차리고 파리바게트에서 ‘그대로토스트’를 사서 테두리를 잘라내고 고구마 샐러드와 마요, 머스터드를 다시 곁들여 샌드위치 만들고 이제 진짜 끝이야 끝. 꿑. 끝!

힐링 하려다 탈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