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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숨/문득

마음의 준비_ <교통사고>

by 휴 우 2019. 11. 24.

이따금, 집근처 편의점 사장님들은 자그마한 무언가를 건네주시며, '힘내'라고 해주신다. 매번 얼마나 감사한지.. 

어렸을 적, 내가 살던 동네에 가장 좋은 어린이집은 번지르르한 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신앙심과는 별개로 어찌저찌 다니다보니 지인들에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1학년 때즈음부터 나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참으로 성실하게 한 번도 빠짐없이, 내가 속한 청소년부 예배시간에는 교회를 나갔고,
잘 기억은 안나지만 여러개로 나뉘어진 팀에서 매년 팀 속장을 도맡았다.

전도하고, 친구들을 데려오고, 예배준비하고, 활동들에 참여하면 달란트를 주었는데
달란트 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달란트 부 서열 1~2위를 다투었던 기억 ㅋㅋ 귀여웠던 시절이다.
순수했으니까, 뭘 모르고 다닐 수 있었던 거지.ㅎㅎ 

무튼,
청소년부 예배는 여러팀으로 구성되어 속장과 담당 선생님이 팀원들을 관리(교회 데려오고, 뭐 그랬던 듯)했는데,
어느 날, 어떻게든 그 구성원 중 한명을 데려오라는 선생님의 압박을 받고, 부담을 안은 채 친구를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고속버스와 많은 차량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도로를 건너야 그 친구네 주유소가 나온다.
제대로 된 신호등도 없이 도로 한복판에 횡단보도만 덩그러니 그려져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친구는 너무나도 가기 싫어했고, 설득하다 실패한 나는 코앞으로 다가온 예배시간에 조급해진 마음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순식간의 일.

 

버스기사가 놀라 황급히 차에서 내린다.

방방을 탈 때도 요령이 없었던 나였기에, 태어나서 그렇게 높이 멀리 나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부웅 날아서 슈웅 떨어졌는데, 신기하게도 별로 다치지 않았다. 

 

아픔보다는, 

'내가 잘 살피지 않아 사고가 났다.', '교회에 늦었다.', '부모님이 아시면 걱정하실 것이다.' 
'저 버스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목적지를 가지 못하고 멈춰있다.'  그런..

밀려오는 두려움, 스스로에 대한 원망으로 모든 의식이 뒤덮었다.

 

내 속도 모르고, 그냥 가겠다는 나를, 이대로 보내면 뺑소니로 걸리기 때문에 안된다며 붙잡고, 경찰을 부르시는 기사님.

얼마 안되어 도착한 경찰들이 나에게 정말 괜찮은 거 맞냐며 걱정스럽게 물어본다.
괜찮으니 집에만 보내달라고만 말했다.
미성년자라서, 부모님을 불러야한다고 했을 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미성년자라서 부모님께 책임을 물으려고 그러시는건가?' 라는 생각이 앞서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잘못했다고 빌면서, 부모님 안부르면 안되냐고 말했던 것 같다.

어찌보면, 참 단순하고 별 게 없는 질문인데...
그 사람들 입장에선, 참 답답하고 이해 안 가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뭐, 그런다고 달라질 게 있나. 결국 부모님이 오셨다. 
행여, 딸이 다쳤을까봐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오신 부모님을 보자 죄스러운 마음으로 이번에는 눈앞이 새햐얘졌다..

부모님이 오시자 상황은 빠르게 종결되었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은 다음날이 되어봐야 알 수 있다며, 문제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주라는 버스기사.
그의 명함을 받아들고 나는 다시 교회로 갔던가.
내가 늦게 온 이유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교회에서는 늦은 걸, 친구를 데려오지 않은 걸 나무랐다. 
나답지 않다며.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이었을거다, 어린 마음에 조금 속상했나보다.
죄송하다고, 다음부터 더 잘하겠다고 말했다. 예배가 끝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집은 조용했다.

가족여행이 있어도, 아무리 아파도 교회에 빠진 적 없던 나는,
그 다음 주 일요일에 처음으로 교회를 가지 않았다.

몸이 아파 갈 수 없을 것 같다, 죄송하다, 연락을 드렸을 때 나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이젠 잘 지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왠지 모르게 그 때의 내가 자꾸 생각난다.

어찌보면, 참 단순하고 별 게 없는 질문들에...마음이 자꾸 주저앉는다.
그 사람들 입장에선, 참 답답하고 이해 안 가는 행동이었일지도 모르겠다.

매일매일이 '사고'처럼 당황스럽고,

'내가 잘 살피지 않아 사고가 났다.', '늦었다.', 
'목적지를 가지 못하고 멈춰있는 건 나뿐이다.'  그런..

밀려오는 두려움, 스스로를 향한 원망으로 모든 의식이 뒤덮여있다.

그래..어찌보면, 참 단순하고 별 게 없는 질문들인데..
참 답답하고 이해가 안 되겠지.

 

사소하고 자잘한 모든 것들이 지금은 내 목을 조르는 것처럼 갑갑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이럴 여유 없는데 끄적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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