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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숨/문득

기다림 1.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by 휴 우 2017. 8. 4.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잇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착어: 생략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실로 ‘기다림’이란 행위 자체는 모든 게 바쁜 요즘 같은 때에 굉장히 비효율적인 것이다.
일정 정도의 느긋함과 인내가 필요하며,
그래서 그 이상의 ‘기대감’이 곁들여져야만 기꺼이 성립될 수 있다.
기다림의 시간은 보통보다 느리게 흐르고, 그 늘어진 시간 속에선 들뜸과 자제, 희망과 불안이 기대의 크기와 비례하는 속도로 숨 가쁘게 교차한다.
적당하다면 만남의 순간을 더 달콤하게 만드는 과정.

조마조마하다.
혹시 니가 깜짝 나타나 나를 놀래키지 않을까.
아니라 해도 미연에 나를 정비하고 더 꼿꼿이 허리를 세운다.

오지 않는 대상을 기다리다
마침내 내가 너에게 가기로 마음을 먹어야 하는 순간은
사실 꽤나 절망적이다.

상대도 조금씩 약속된 곳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을지 모른다는
절박한 기대로
행여 길이 어긋날까 조바심 내며 향하는 길.

단순하고 명확하게 정해진 약속이라면
너도나도 모두 폰을 손에 쥐고 다니는 요즘 같은 시대엔
전화를 걸어 대상을 재촉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다림의 종류와 대상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가령 백난지중대인난이라고..사람을 기다린대도
제 시간에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과
나를 떠난 타인의 마음이 돌아오길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부터가
다르니까.

그래서 기다림은 어렵고 힘든 것 같다.
상황에 적절한 기다림의 자세란.
'기다림'이란 기다란 시간은 사람의 마음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부쩍 많아진 만남의 약속.
우리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기다리는 동안
이 시가 머리 속을 스쳐갔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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