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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자취생의 하루

동기 하 나

by 휴 우 2016. 11. 18.

정신없이, 허무하게 또 2학년 2학기가 저물어가고 있다.
3학년을 코앞에 두니 기분이 묘하다. 소중한 사람의 수술, 학점, 장학금, 알바, 건강, 인간관계, 동아리, 외모, 흐트러진 가치관 등등 어느 하나 적당한 스트레스가 아니다. 벅차다. 체력에 한계가 온 시점에서 마주할 수 있는 건... 스스로의 무능력함뿐이란 걸 실감했을 때만큼, 절망적인 건 없는 것 같다. 다시 일어설 힘을 짜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게으른 탓이다.

대학교 입학 초부터 불안하게 시작되어 며칠 전까지. 내 인내심을 거의 매일같이 시험에 들게 하던, 그러나 일말의 안쓰러움과 정에 이끌려 져버리지 못했던 동기 한 명과의 인연을 끝냈다.

1년 반이 넘는 시간동안 친구였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나와 맞지 않았던 친구였고, 아무렇지 않게 무심한 말과 태도로 매번 마음에 비수를 꽂는 아이였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서로가 싫어하는 것을 알고 고쳐나가면 조금씩 나아질 것이란 믿음으로 버티며 그 아이에 대한 미운 정, 고운 정으로 마음이 물들어갈 때쯤, 같이 알바 하는 언니가 그만두고, 손재주가 있으니 일을 잘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카페 알바를 하고 싶다고 했기에 그 아이를 사장님께 말씀드렸고, 그렇게 같이 알바를 시작하게 된 것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자승자박.
이젠 상기하는 것마저도 지치는 1년간의 기억들.

그 아이는 내 생각도 많이 해줬고 착했고, 새로운 경험들을 안겨주기도 했다. 위안 삼으며 지금까지 버티게 해준 기억들...시험기간의 스누피 우유 같은 존재들이다. 과한 피로누적은 카페인도 소용이 없다. 괴상한 각성상태는 수면도 공부도 놓치게 하는 법.

만남의 순간마다 마음에 과제를 얹어주었던 인연은, 며칠 전 가장 친한 나의 친구들과 그 아이 함께 조별과제를 하면서 확실히 정리될 구실이 마련되었다. 적반하장의 자세로 사건을 펑펑 터뜨려 주었고, 나머지 조원들과 함께 분노와 한숨으로 발표당일까지 견뎌내었다. 둘이 있을 땐 넘길 수 있을지 몰랐던 망언들을... 다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어김없이 함으로써, 나의 마음은 결단을 내린다. 어느 날의 카톡으로 그 마음을 전했고, 그 아이와 나의 관계는 정리가 되었지만 시간표가 거의 겹치는 탓에 자주 마주치고, 다른 조별 발표도 하나 남아있는 상태이다.

인연을 끊어내기까지 너무 많은 고민과 죄책감에 시달린 탓에 노이로제에 걸린 듯했다. 남은 조별발표하나로 마주침을 피할 수 없음이 그를 더 부추겼다.
이렇게 한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내적갈등이 길게 일었던 적도 없었고, 인연을 딱 잘라낸 적도 없었다. 엄청난 개운함과 함께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관련된 소재를 발견하면 이전을 회상하며, 차오르는 분노로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끼며 아차 싶었다. 다른 형태로 그 아이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어한다.

얼마 전까지 그렇게 가까웠던 사람을 이토록 미워하다니, 뒤에서나 얘기하다니. 내가 이정도 밖에 안되는 나쁜 사람이었나. 그렇다면 나같이 나쁜 애가 누군가를 나쁘다 말할 자격은 있는 걸까. 내가 힘들였다면 힘들었던 거지. 긴 시간 고민하고 망설여 내린 결론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나의 변화.

한번이라도 좋은 인연이란 생각이 들면, 그 인연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심했​다. 그런 집착은 굉장히 유아적이고, 세상의 이치에 맞지도 앉는 발상이다. 되레 진짜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 보다 소홀해지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저 많이 아쉽고 서운하다. 그리고 힘들다.

그래서 나의 악연을 완전히 정리해야겠다 싶을 땐, 과하게 미워하는 것 같다. 그만큼까지 미워함으로써 결별에 대한 일말의 미련을 정리하고, 때문에 생길 마음의 상처로부터 자기방어를 하고, 바른 선택이었다고 합리화하는 걸지도 모른다.
옳은 태도는 아니지만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촛불이 꺼지기 직전, 가장 밝게 타오르는 찰나인 듯하다. 그 아이에 대한 스트레스를 접으려 그리 결연한 마음으로 관계를 정리하고서, 오히려 머릿속은 가득 차 있었다. 그 아이는 이번 주쯤까지 하고 알바도 잘릴 것이고, 다음 주 발표도 끝나면 마주할 일도 줄겠지.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르고 나이는 차가는데 느는 것이라고는 살이랑 주름, 잡념, 후회.

원했던 내 모습과는 점점 어긋나고, 의도치 않게 재정비에 들어간 가치관은 자리를 잡지 못해 여전히 방황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에 대해 자꾸 ‘이건 아닌데..’라는 혼란이 인다. 할 일도 많은데 답답함에 산만하게 주저리주저리. 이럴 시간이 없는데.

결국 사람의 역사는 후견지명이었다. 오늘의 똥 낭비를 또 하나의 거름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미래의 내 모습뿐이니 다시 마음을 다잡는수밖에.

​동기 한 명, 동기 그리고 나, 날 돌아보게한 동기(계기)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