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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알바생의 시선

by 휴 우 2017. 5. 11.
학교 차량 정산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 집에 오니 새벽 1시를 지난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공부, 양심의 소리 없는 잔소리가 머리에 맴돈다. 

잠도 설쳐 찌뿌둥한 상태로 아침 11시 집을 나서면서 시작된
카페, 차량 알바로 녹초가 된 몸은 애써 외면하며 늘어지려고만 한다.

이제 다시 몇 시간 뒤, 출근할 카페.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카페를, 사장님을, 내가 만든 음료를 좋아해주는 손님들을, 카페 일을 하고 있는 나에 대한 애착이 컸다.

 
열정이 식었어도 3번의 해가 바뀌는 세월동안 이곳에 물든 정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지금 ‘나’ ‘사장님’ ‘카페’ ‘타알바생’ ‘지인’ 등등
카페 알바생으로서 지내며 얽혀간 사건과 스트레스나 상처는 다른 듯 비슷했고 반복된다.

마음이 변했어도 길들여진 정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쌓인 화를 끝내 누르며
지난날을 후회하는 마음으로 일을 그만둔다는 게,
그간의 노력과 추억마저 왜곡하는 느낌이라 참으로 속상하다.

생채기가 난 맘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머리로는 모를리 없는 바른 소리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니
강력한 바이러스로 침입한다.

아닌 정신에 온갖 면역체계를 동원해 이 이물질을 제거하려다보니
상처가 되는 말을 제거하려는 건지
상처 준 사람을 밀어내고픈 건지  헷갈린다.

나 스스로 옥죄임을 느껴가는 타인들과의 관계,
미워하는 게 쉽지 않아 더 아프다.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Caarl schmitt, 1888-1985)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정치적인 것’이란 ‘적과 동지’라는 범주로 작동한다고 규정한다.

‘사랑’이란 말 뒤에서도 이해타산을 따지는 요즘 사회에서, 모든 관계가 정치임을 실감한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이 위태로운 상황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는 나에게는 퍽 조마조마한 일이다.

내 마음은 여전해도 불행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그 마음 졸임에 지쳐
내가 먼저 ‘적’을 단정 짓고 그 사람들에 대한 마음을 접어가는 멍청한 현상.

'내'가 없는
타인에게 맞춘
의존적인 관계였던 탓일게다.

아닌 정신에 온갖 면역체계들이 날이 섰다.


이렇게 한 것도 없이 또 날을 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