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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음식과 추억

비오는 날의 낭만_ <홍도주막>

by 휴 우 2018. 5. 14.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것 같다.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을 견뎌내고 피어난 봄꽃들의 머리를 후드려치는 비의 심보가 대체 무언지 야속했던 3-4월이 훅훅 지나고 벌써 5월이다.

두려울 정도로 (심지어 비올 때 마저도) 아름답고 완벽했던 날씨들로 채워져가는 5월 초.

평소같으면 툴툴거릴 정도로 꽤나 많은 비가 쏟아졌던 이번 주말이었다. 그런데 왠지 나쁘지 않았다. 

오늘의 목적지, 그곳의 음식들과 잘 어울려서 

오히려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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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알바를 통해 친해진 오라버니들 중 순수한 감성을 가진 오빠가 전주에서 삼합을 먹으러 간다기에 물어 알게 된 '홍도주막'!


4명이서 충분히 먹는다는 

홍어 삼합 大짜리가 32,000원, 中짜리는 20,000원

홍어탕이랑 세트로 먹으면 大 35,000, 中 24,000원 이라니.. 그것도 전주에서... 완전 괜찮은걸?!

광어, 우럭회도 왠만한 횟집보다 양이 훨~씬 많다는 후기들에 '어머, 여긴 꼭 가야해!' 


평일 알바 없는 날에는 꼭 스피닝을 간다. 

전북대 락코인 노래방은 거의 매일 간다. (노래 부르러 가는 거 아님. 혼자! 소리 지르러 가는 겁니다.)

스피닝과 코노에서의 우연한 마주침들로 연이 되어, 요새 급격히 친해진 오라버니가 한 분 있다.

사건사고가 많았던 3학년 복학생의 무지막지한 히스테리를 다 받아주고 계시는 대단한 분이다. 흡.

어김없이 이닐도 카톡을 하다가 '홍도주막' 얘기가 나왔고

오라버니께서 한번도 제대로 삼합을 먹어본적 없다고 하는 게 아닌가. 

'옳다구나! 시험 끝나고 가자!' 날을 정한다. 5월 12일에 가는 걸로~ 탕탕!

벼르고 벼르다 이번 주말에서야 드디어 왔다. 무려 오기까지 한달이 걸렸습니다. 크큭...


전주 효자동 CGV 근처에 있는 '홍도주막'! 

택시기사님도 바로 아시더라는~ '여기는 꼭 배고픈 상태에서 가야한다'는 조언을 건네주시니 우리의 기대치가 한 층 더 올라갑니다.



PM 9, 비가 쏴아쏴아 엄청 퍼부었던. 사진은 좀 잠잠해질 때 찍었다.

넘나 배고프고, 굳이 마카롱 사겠다고 CGV에서 내려 근처에서 마카롱 잔뜩 사서 걸어오는데, 

와.. 다 젖음.


정신없이 들어와 주문.

메뉴판이랑 매장 사진이 없네ㅠ 신발 벗고 들어가는 좌식테이블들이 놓여있는, 그런 느낌일 줄 알았는데 

모두 입식 테이블이었다. 약간 건물로 된 포차 느낌도 나고.

낭만적이야...★


전북대 구정문 덕진광장 쪽에 위치한 광장포차처럼 몇 분의 어머님들이 같이 운영하시는 것 같았다.

나와 또래인 딸내미가 있다는 한 여사장님께서 살갑게 말을 걸어주신다.

친절함과는 별개의 문제로, 기계적으로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 주는 대학로의 여느 가게들에서 느끼기 힘든 정. 

'정'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향수를 남긴다. 

비오는 날, 종종 들를 가게가 될 것 같다. 


'홍어 삼합+ 홍어탕 세트 中' (24,000) & 막걸리(3,000) & 햇반(1,000)!


알차고 맛난 기본찬들. 

특히 꽁치와 어묵탕, 번데기, 완두콩만 가지고도 술안주로 충분한데...! 


꽁치가 엄청 컸다. 맛있엉..ㅠ


메인인 '삼합'에서 홍어회는 과하지 않고 적당히 삭혀졌다. 

처음 접하는 오빠도 맛있다고 했다. 엄청 삭힌 걸 기대하는 분이라면 살짝 아쉬울 수 있다.

삭힌 정도에 대한 선호가 딱히 없는 필자는 아주 만족스럽게 먹었다.



뭉근하게 훅 퍼지는 암모니아 향과 부드러운 수육, 맛깔나게 익은 김치의 조합~★

여기에 막걸리 한 잔, 짠~ 캬아~♥



홍어탕은 홍어가 제대로 삭혀진.......!!!!!

코가 뻥 뚤리는 시원 화끈함! 

홍어코로 끓인 맑은 지리탕도 좋아라하는지라 나는 잘 먹었지만,

같이 먹은 오빠는 주체할 수 없이 품어져 나오는 암모니아향을 잘 견디지 못하시는 듯 보였다. 

홍어탕은 내가 거의 독차지 했다. 


I LIKE IT! 


숨막힐 정도로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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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정신 없었던 복학 후의 일상.

잽 잽 잽 어퍼 바디 스트레이트 사건들이 멘탈을 자꾸 후려치는데 최근 치명적인 훅을 얻어맞았다.

그 때의 아득함에 되려 정신이 들었다.

조금씩 다시 회복해 가는 중이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낭만적인 날에

편하고 좋은 사람과 함께

맛깔나고 푸짐한 음식과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다는 건

실로,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